조디악 :: ZODIAK Killer
치열함 뒤에 갖는 휴식은 천국과 같다고 했던가?
지금 내게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지난 2주간 '피를 말리는'이라는 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신경을 써왔던 일을
마무리하면서 오늘과 내일은 일에서 손을 놓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더위도 피할 겸 요 며칠간 보고 싶었던 조디악을 보러 갔다.
조디악, 조디악 킬러라고 하면 범죄학을 전공하거나 그런 쪽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너무도 유명한 미국의 미결 연쇄살인 사건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화성 연쇄 살인처럼.
영화는 희대의 살인마를 다루는 여화답지 않게, 무겁거나 침울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디악 킬러가 아닌 조디악 킬러에 집착하는 카투니스트와 사건 전담 형사 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일반적인 형사의 이미지 '터프함 이라든지 과격함 같은 것' 를 이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다.
처음 형사역을 맡은 배우가 등장하고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일반 남성보다 더 가는 목소리로 그의 성격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 실은, 형사의 목소리와 어투가 너무 독특해 이질적이었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바로 익숙해져 버렸다.. -
또 한가지, 7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근 2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영화 배경 안에 잘 살려 내고 있다.
특정시대의 특정 장소가 나타내는 특징을 잘 그려내고 있어 이를 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영화에는 영어 히어링에 잼병이인 나도 피식 하고 웃을 수 있는 블랙 유머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있다.
한 장면에선 '밥은 먹고다니냐?'란 번역이 나오는데-물론 배우의 스크립트는 그렇지 않았지만-
딱 맞는 장면에 적절한 번역으로 묘하게 '살인의 추억'이 오버랩 되어 순간 객석에서 일어나는 약간의 동요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아닐까?
데이빗 핀처 감독의 두 전작을 보단 폭력성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영화.
단, 느린 전개와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면서 봐야 하는 영화를 꺼리는 사람에게는
긴 상영시간과 맞물려 무지 지루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제작노트 ..
About ZODIAC
“나는 조디악 킬러다…
나는 살인하는 것이 즐겁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숲의 야생짐승을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 조디악 킬러가 보낸 암호문 중 발췌-
본 사건은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발한 1966년 이후 41년이 지난 현재까지 끝내 검거되지 않은 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영구 미결 사건이다.
1969년 8월 1일 신문사에 처음 자신의 살인행각을 담은 편지를 보낸 이후 1978년 4월 25일 마지막 편지까지 암호만 던진 채 잡히지 않고 미국 전역을 공포로 밀어 넣은 살인마 ‘조디악 킬러’.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13명을 습격했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확실하게 밝혀진 피해자 7명 중 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사결과 24명의 피해자가 더 있었고 실제 살해된 피해자가 몇 명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명의 생존자는 여전히 실존하고 있다.
*사건 개요
>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 3대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발레호 타임즈 헤럴드 앞으로 자신의 살인행각을 밝히는 편지와 함께 각기 다른 3종의 암호문 도착
증거물 1 – 1969년 8월 1일. 첫 번째 편지
> 1969년 10월 13일, 편지와 살해한 택시운전사의 셔츠 조각 동봉
증거물 2 – 1969년 10월 13일. 편지와 피해자의 셔츠 조각
증거물 3 – 1969년 11월 8일. 해독되지 않은 340의 암호 문양
> 1979년 8월 9일. 그레이스미스가 해독해냄
> 1969년 11월 9일, 자신을 밝히지 않고 위장범행을 하겠다는 내용의 일곱 번째 편지 도착
“… I shall no longer announce to anyone when I commit my murders, they shall look like routine robberies, killings of anger and a few fake accidents, etc…”
Letter 7 - November 9, 1969
> 1970년 8월 20일, 자신의 실제 이름이라며 암호로 기록한 편지 도착
증거물4 – 1970년 8월 20일. 실명을 암호로 적은 편지
*사건 일지
: 조디악 킬러의 편지에 의거한 사건 희생자들
첫 번째 사건:
1. 사건발생일: 1968년 12월 20일
2. 장소 : 솔라노 카운티의 허만 호수
3. 희생자 : 데이빗 파라데이(당시 17세, 남) 머리에 관통상 입고 즉사
베티 루 젠슨(당시 16세, 여) 다섯 발의 총을 맞고 즉사
4. 특징 : 데이빗 파라데이가 마약과 관련된 일에 연루되어 마약범죄로 간주되었다가 조디악 킬러가 첫 번째 편지에 자신이 범인이라며 이 사건에 관해 경찰만이 알 수 있는 세세한 내용을 적어 조디악의 희생자로 분류됨.
두 번째 사건:
1. 사건발생일 : 1969년 7월 4일
2. 장소 : 발레이오의 블루 락 스프링스 골프코스
3. 희생자 : 달린 퍼린(당시 22세, 여) 다섯 발의 총을 맞고 즉사
마이크 마고(당시 19세, 남) 네발의 총을 맞고 살아남. 첫 번째 생존자
4. 특징 : 생존자 마이크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차 옆에 차 한 대가 주차한 후 한 남자가 후레쉬를 들고 접근, 다섯 발의 총을 난사하고 갔다가 자신의 비명소리를 듣고 돌아와 각각 두발씩 총을 더 쐈다고 한다. 180cm 정도의 키에 탄탄한 몸을 가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백인남성을 목격했으나 당시 경찰들의 미흡한 조사로 용의자 사진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2년 후 재 조사과정에서 범인을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선변호사가 개인적인 시간부족을 이유로 거짓으로 치부함.
사건발생 45분 정도 후 경찰은 한 남자로부터 이 자신이 이 사건의 범인이며 첫 번째 사건도 자신의 범행임을 밝히는 전화를 받았다.
세 번째 사건:
1. 사건발생일 : 1969년 9월 27일 오후 6시 30분
2. 장소 : 나파 카운티 베르예사 호수
3. 희생자 : 세실리아 앤 쉐퍼드(당시 22세, 여) 몸의 앞쪽 5군데, 뒤쪽 5군데,
총 10군데를 칼로 찔리고 병원 후송 후 48시간 만에 사망
브라이언 하트넬(당시 20세, 남) 등 6번을 찔렸으나 생존. 두 번째 생존자
4. 특징 : 생존자인 브라이언의 증언에 따르면, 키 180cm 정도의 복면을 쓴 남자가 총과 칼로 무장한 채 다가와 자신은 몬태나 감옥에서 탈주한 탈옥범으로 멕시코로 가기 위해 돈과 차가 필요하다고 했고 이에 자동차 열쇠와 지갑을 건네주었으나 가져 가지 않고 두 사람을 플라스틱 끈으로 묶고 칼로 찌른 다음 유유히 사라졌다고 함.
현장조사에 따르면 범인은 피해자의 차 문에 범행일자와 시간, 범행도구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조디악 기호를 남겼고 이 때도 역시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범행을 밝혔다.
증거물5 – 조디악 킬러의 복면 삽화
<세실리아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데이빗 콜린스 순경의 증언>
: 칼에 찔린 브라이언과 세실리아는 여전히 묶인 채 담요 위에 누워 있었다. 마침 근처 호수에 있던 어부 한 명이 있었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 비명을 들은 어부는 누군가 자신에게 덮치려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10여분을 숨어 있다가 누군가 습격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자들은 칼에 맞았으니 자신들 쪽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어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다며 떠났다. 계속 포박된 채로 누워 있었던 그들은 어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를 도망치려 했다. 피를 많이 흘려 힘이 없는 상태에서 세실리아가 브라이언의 매듭을 풀어 주었고 브라이언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기어가려 애썼지만 발견됐을 때 현장에서 불과 9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어부와 그의 아들, 근처 산장의 주인이 경찰과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구불구불한 산길 때문에 경찰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30분이나 걸렸고 구급차는 20분 뒤 도착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구조되기까지 피해자들은 1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했다.
두건을 쓰기 전 조디악의 얼굴을 본 세실리아는 콜린스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죽기 직전까지 만들고 나서야 난도질을 멈추고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쇼크 상태에 빠질 찰나까지 심하게 난자 당한 세실리아는 후송 중 연신 ‘얼어 죽겠어요. 온 몸이 다 아파요. 진통제 좀 주세요.’라며 울부짖었다고 했다.
브라이언은 목숨을 건졌지만 세실리아는 병원 이송 후 48시간 뒤 사망했다.
네 번째 사건:
1. 사건발생일 : 1969년 10월 11일 밤 10시 10분
2. 장소 : 프레시디오 하이츠 부근
3. 희생자 : 택시 운전사 폴 리 스타인. 후두에 총 맞아 사망
*희생자들
조디악 킬러에게 피격에도 살아남은 생존자는 마이크 마고와 브라이언 하트넬 두 명이다.
마이크 마고는 1969년 총에 맞은 이후 거의 회복되지 못했다. 영화제작을 위해 마이크 마고를 찾았을 때 그는 부랑 죄로 복역 중이었고 면회를 가서 그를 인터뷰 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으며 브라이언 하트넬 역시 사법권의 테두리에서 떠돌아다니면서 불행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증거물6 –현상수배 전단
*암호해독
1969년 8월 1일 처음 신문사로 우송된 살인범의 편지에 동봉된 암호문은 파란색 펜으로 그리스어, 모스 부호, 날씨 기호, 알파벳, 해군 수신호, 점성술 기호 등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암호문을 동봉한 편지들은 살인의 단서를 가득 담은 채 계속 보내졌다. 피해자의 피가 뭍은 셔츠 조각이 배달된 적도 있었고 대규모의 어린 학생들 학살을 예고하는 협박도 있었다. CIA와 FBI, NIA, 해군정보부, 국가안전보장국의 전문 암호해독가들이 암호해독을 시도했지만 암호는 풀리지 않았다. 노스 살리나스 고등학교 교사인 도널드 하덴이 어린 시절 보이스카우트에서 퍼즐을 풀었던 추억을 되살려 암호해독을 하기 전까지는 범인의 의도와 신원 및 관련된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현재 78세가 된 하덴은 전 부인이 암호를 해독하려는 것을 보다가 답답한 마음에 3일 동안 매달려 함께 해독한 암호를 신문사에 보냈다. 하덴 부부의 해독본이 신문에 나가자 하룻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FBI의 전화까지 받았다. 그러나 언론보도 이후 부인과 그는 범인이 자신들을 찾을 것이라는 걱정으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하덴 부부의 암호해독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일정 단어들의 빈번한 출연을 확인한 후 범인이 영어의 구성 패턴을 분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T, A, O, N, I, R, S 뒤에 E가 따르고 다음으로 주로 L, E, S가 나온다
2.가장 흔하게 같은 철자로 한 쌍을 이루는 알파벳은 LL, 가장 흔히 서로 다른 철자로 쌍을 이루는 것은 TH, HE, AB이다.
3.“T, A, O, S 또는 W로 시작하는 단어의 절반 이상이 THE, ING, CON, ENT의 세 문자로 된 조합과 결합한다.
또한 범인은 문자가 아닌 상징이나 형상을 대체 암호로 쓰고 있었다. 범인이 여러 가지 암호를 혼합해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일대일 대응 식의 문자 배합이 아닌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만 했다. 범인이 반복하고 있는 상징을 추론하고 일정하지 않은 숫자를 제거했다. 그러자 해독의 길이 열렸다. 하덴 부부는 살인범의 암호에서 패턴에 따라 ‘kill’이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냈다. 이런 식으로 풀어낸 암호는 다음과 같다.
“나는 살인이 즐겁다 사람 죽이는 일이 숲의 야생짐승을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다 사람을 죽일 때의 그 짜릿함은 섹스할 때보다 더 황홀하고 내게는 제일 스릴 넘치는 일이다 나는 낙원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 곳에서 내가 죽인 자들을 노예로 부리고 살 것이다 당신들에게 내 이름은 알려주지 않겠다 내 이름을 알려주면 내가 노예를 수집하는 일을 막으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이비오리에테메쓰히티(EBEORIETEMETHHPITI)”
하덴 부부는 마지막 부분의 철자를 바꾸면 로버트 에밋 더 히피(ROBERT EMMET THE HIPPIE)가 된다고 했으나 범인이 암호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다고 단언했기 때문에 이는 이름이 아닐 것이라 추측했다.
하덴 부부가 암호를 해독한 23년 후인 1992년 8월에서야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대학 시절에 히피가 되었다가 독일로 이주한 로버트 에밋 로다이퍼의 고등학교 시절, 그를 질투한 수영팀 라이벌 아더 리 앨런을 지명했다.
그레이스미스 역시 로버트 에밋 더 히피라는 문장이 살인범의 신원을 알려주는 단서라고 믿는다. 1969년 하덴 부부가 조디악의 312개 암호를 푼 이후, 그 해석을 이용하여 1932년 작 무성영화 <가장 위험한 게임>에 등장한 사람을 사냥하는 ‘자로프 백작’과 조디악의 암호를 연관 지은 사람이 그레이스미스였다.
‘가장 위험한 게임’은 바로 ‘인간을 사냥’하는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로버트 에밋 더 히피’로 추론된 해석을 포함, 하든 부부의 암호해석에 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여러 논의를 제기했지만 현재까지 이들의 해석을 반발한 명확한 논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로버트 에밋 더 히피’라는 해석에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주장1:
1969년 두 번째 사건 당시 발레이오 경찰청 경사였고 지금은 은퇴한 바와트의 인터뷰>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을 때까지만 해도 경찰은 연쇄살인이 아닌 단순 살인사건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베르예사 호수에서 사건이 터지자 상황은 바뀌었다. 신문사로 편지가 배달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연쇄살인일지 모른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찰은 생존자인 마고의 증언에 따라 1971년 아더 리 앨런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여 조사를 시작했고 아더 리 앨런의 트레일러에서 폭탄을 비롯해 조디악 편지에서 언급했던 물건의 상당 수를 발견했으나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범인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1992년 한 여성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 ‘로버트 에밋 더 히피’라는 이름을 보고 자신이 아는 사람임을 밝히면서 정체가 밝혀졌는데 수영팀을 간신히 꾸려나가다가 히피가 된 ‘로버트 에밋 로다이퍼’가 그의 본명이었다. 아더 리 앨런은 그 팀의 다이버였고 로버트 에밋은 아더 리 앨런이 자신을 몹시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건발생 22년 후인 1991년 공항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생존자인 마고와의 인터뷰에서 마고는 용의자들의 사진 중 아더 리 앨런을 지목했다. 어떻게 자신이 지목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확신하는지 묻자 그는 ‘이 얼굴을 처음 본 게 69년 7월 4일이다. 날 쏜 사람이 틀림 없다.’라고 대답했다. 마고의 증언에 따라 당국은 기소를 위한 회의를 소집했지만 아더 리 앨런은 회의 전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편지에서 발견된 DNA샘플 조사결과, 아더 리 앨런의 DNA와 불일치한다는 결론이 났지만, 바와트는 여전히 아더 리 앨런이 조디악이라고 믿고 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은 공식적으로 조디악 사건을 종결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수사를 진행 중이다.
<‘로버트 에밋 더 히피’라는 해석에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주장2:
법정 언어전문가 제럴드 맥메나민의 소견>
1969년 10월 11일 샌프란시스코의 택시운전사 폴 스타인을 잔인하게 총살한 사건현장에서 손 글씨와 피 묻은 지문이 발견되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것이 조디악의 신원을 밝힐 중요한 단서라고 믿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뒤 다른 전문가가 조디악의 편지에 쓰인 손 글씨를 보고 이는 신원을 위장하기 위한 술수였음을 밝혀냈다.
제작진은 조디악의 편지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법정 언어전문가이자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인 제럴드 맥메나민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럴드 교수는 암호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언어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의 무의식이 작용하는 곳은 자연언어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패턴이 있고 단어를 어떻게 나누는지, 음절과 문법에 있어 의미가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형태소를 어떻게 나누는지 봐야만이 의미론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편지의 형식이나 글씨, 종이, 잉크 등에 초점을 맞추었던 문서 조사자들과 달리 제럴드 교수는 조디악이 쓰고 있는 언어와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을 단어구조와 철자에 초점을 두고 조사했고 이에 글 쓰는 사람이 단어를 분절하는 것을 통해 위장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조디악의 편지를 아더 리 앨런의 글씨와 비교하기 위해 1972년 9월 20일 그가 오른손으로 써서 넘긴 글씨 샘플을 받았다. 자신의 글씨를 위장하기 위해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는 왼손잡이이지만 오른손으로도 몇 가지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알려진 앨런이 남긴 오른손으로 쓴 유일한 자료였다. 비교결과, 조디악의 편지에서 발견한 음절과 형태소에서 단어를 나누는 방식이 앨런이 오른손으로 쓴 글씨에서도 발견되었다.
조디악의 글씨와 비교할 수 있는 5개의 문장과 3개의 분절 부분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는 충분한 자료가 아니다. 맥메나민 교수의 개인적인 결론은 5개의 문장을 봐서 동일 인물이 확실하다고 믿는다.
유력 용의자에 대한 증거가 확실해지고 있다.
사건의 종지부를 찍을 날은 다가오는가?
About the MOVIE
스크린으로 옮겨진 악몽
“범인은 못된 아기를 데려간다는 전설 속의 요괴와 같은 존재였다. 당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건의 소식을 접하고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사건 현장에 있던 스쿨버스에 내가 타고 있었다면?’, ‘살인마가 우리 집에 나타난다면?’ 실제 내가 살던 곳은 사건현장과는 좀 떨어진 마린이라는 지역이었지만 조디악 킬러가 우리 동네에도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두려웠다.”
-데이빗 핀처
70년대 초 당시 7살이었던 데이빗 핀처 감독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조디악’이라고만 알려진 보이지 않는 괴물에게 사로잡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이 30년 뒤 이 살인마에 대한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온통 ‘조디악’에게 사로잡힌 그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스릴러 영화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세븐>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디악 킬러’를 본격적으로 다룬 <조디악>을 찍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가장 악명 높았던 살인자를 쫓던 몇몇 경찰관들과 함께 살인범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 10,000장이 넘는 서류와 증거들을 샅샅이 훑었으며 생존자들과 피해자들의 유족들, 유력 용의자의 친지들과 인터뷰도 했다. 그 당시 유력했던 용의자는 소아 성애자로 돌변한 전직 수영교사로 아끼던 어린 학생들 때문에 방화와 감금을 일삼은 자였다.
그런 과정에서 핀처 역시 영화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살인자의 미스터리를 풀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삽화가에게 불씨를 당긴 바로 그 욕구였다.
본래 핀처 감독에게는 인간의 행동과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을 놀랄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 사건 속의 감정을 명확하게 풀어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세븐><파이트 클럽><패닉 룸> 등 전작들이 모두 그러했다. 감독이 전하는 감정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게 몰입하게 된다.
핀처 감독은 <조디악>을 일반 스릴러물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어떤 사실에 너무 집착해서 몇 날 몇 일이 지나도 그것을 떨쳐버릴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디악>의 기본 바탕은 이런 비정상적 반사회 행동단계와 관련이 깊다. 사람들이 연쇄 살인자나 생존자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전혀 상관 없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기를 원한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억제하기 어려운 욕망이며 결국에는 파괴본능과 관련이 있다. 핀처 감독은 우리의 이런 욕망을 영화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조디악의 초상-원작자 그레이스미스
”사설 만화가로서 일하는 동안 세상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으며 화가이자 삽화가였기 때문에 매일 암호를 다루는 일을 했다. …그 때 당시, 잭 더 리퍼 이후로 언론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신원에 관한 실마리를 던져 경찰을 조롱하던 살인범은 없었다. 범인이 보낸 편지의 기이함이 나를 유혹했다.”
-『조디악』의 저자,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핀처가 느낀 것과 동일한 강박관념을 베스트셀러가 된 『조디악』과 후기작『조디악 언매스크트』 두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사건에 관한 모든 세세한 사항을 분단위로 재연하면서 4곳의 경찰 관할권에서 실제 조사를 벌인 사람들에 관해 자세한 내용들을 글로 써냈다. 지난 날 자신과 동료 폴 에이브리의 모습을 조롱하는 고통스러운 어조로.
그레이스미스는 개인시간을 투자해 조디악 사건에 대해 조사했다. 모두들 사건에서 손을 뗐을 때도 그는 사건을 뒤쫓았다. 그는 대중들도 살인자를 쫓는데 몰입할 수 있도록 두 권의 서적을 일인칭 일기형식으로 썼다.
그가 집필을 시작했을 무렵 수사망은 2,500명의 용의자들로 좁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조디악은 대단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은 최고가 될 수 있었고 때문에 경찰은 혼자만이 공을 독식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덮어버리는데 급급했다. 경찰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고 다만 조사한 내용이 진실에 가까울 때만 그것이 맞는지 틀린 지 확인해줄 뿐이었다. 자료를 관람할 때도 필기도구나 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련번호와 날짜 등을 외워야만 했다.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써 내려가기까지 꽤 오랫동안 인고의 시절을 보내고 10년 후, 13번의 수정을 거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자료를 351쪽의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정리했다.
사건에 관해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경찰이 놓쳤던 목격자와 용의자들을 추적했고 여러 개의 경찰서를 방문하여 조디악이 검거될 수 있도록 모든 사실을 통합하여 경찰들과 공유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의 평생 소원은 조디악의 검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폭풍 같았던 추적과 집필의 여정을 떠올려볼 때 자신을 포함한 사건과 연루된 극중 인물들이 실제로 조디악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은 것은 경이로운 일이라고 한다. 오랜 추적, 감당할 수 없는 광기, 미스터리, 비극과 죽음, 그리고 엉망이 된 결혼 생활, 엇나간 직업 경력, 파괴된 건강까지. <조디악>은 경찰들이 계속해서 뒤통수를 맞고 있을 당시의 좌절에 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실제인물, 영화 속 인물, 그리고 배우들
<조디악>은 연쇄 살인범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살인범을 쫓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강하게 사로잡혀 자신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는 잊은 채 길을 헤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살인범을 쫓아 가는 작업은 그들에게 강박관념이 되었고 그 강박관념은 각자를 지배하고 있는 과거의 환영에 빠져들게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살인범의 올가미로 그들의 삶은 형성되고 파괴되었다. 그레이스미스는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고 에이브리는 마약중독으로 망가졌다. 토스키는 타락했고 암스트롱은 좌절했다.
조디악이 보낸 암호를 해독한 뒤 몇 년 후 사건이 미결상태로 남게 되자 책 집필을 가장하여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그레이스미스.
제이크 질렌할은 데이빗 핀처에게 받은 각본을 펼치자마자 각본의 사실성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살인사건의 묘사가 무서웠지만 이것이 모두 사실이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은 그를 즉각 촬영에 참여하게 했다. 실제인물을 사실적으로 연기하기 위해 질렌할은 계획적이고 과학적인 과정을 겪었다. 그레이스미스를 만나 그의 독특한 버릇을 연구하고 행동과 성격을 파악했다. 그레이스미스의 열정과 민감함을 포착했고, 출신배경과 공손한 태도, 기질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그러나 그는 있는 그대로 연기한 것이 아니라 해석을 가미해 연기했다.
유일하게 현재 생존해 있지 않은 인물 폴 에이브리는 유머감각 있고 뼈 있는 농담을 즐겨 하던 유능한 기자였다. 그러나 코카인에 손을 댔고 중독되어 몸이 심하게 망가졌다. 그리고 사망하기 전에 손주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조디악 킬러’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했다.
동료 배우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야기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특별한 에너지를 지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동료배우들은 하나같이 그를 천재라고 불렀고 늘 존경해 왔던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흥분되기도 하고 전율을 일으킬만한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토스키는 사건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1977년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를 만났고 책 집필을 도와주며 현재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마크 러팔로는 자신이 맡은 토스키라는 인물과 감독이 각본에 그린 그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잔인하기 때문에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연기하게 될 토스키라는 캐릭터는 배우들이 누구나 탐낼만한, 형사를 연기하려고 할 때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데이빗 핀처는 거의 모든 배역이 실제인물과 매우 흡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캐스팅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Production Note
방대한 조사
<조디악>의 각본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방대한 조사를 통해 쓰인 것이며 극적인 영화가 그릴 수 있는 한도에서 실제사건을 가장 명확하고 정확하게 그려낸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사건과 관련된 모든 생존인물들을 인터뷰 했고, 관련된 그 어떤 자료든 모두 수집했다.
사건은 오랜 세월 동안 미결 상태로 남아 있었고 이를 다시 정리하는 것은 제작진의 몫이었다. 이는 대규모의 작업이었다. 먼저 사실과 허구 사이의 분명한 선을 긋고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사소한 사실일지라도 자료의 아귀가 맞지 않을 경우 수집한 자료의 6분의 5를 버리기도 했다.
영화에 첨가한 사실들은 두 권의 책과 방대한 인터뷰, 경찰의 조서를 근거했다. 준비 과정은 길고 힘겨웠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따라서 제 2의 혹은 제 3의 경로를 통한 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레이스미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정확한 고증을 위해 당시 사건에 대한 다른 시선과 다른 견해를 비교하며 제자리를 잡았다. 각본작업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도 같은 사건에 대해 두 사람의 확인을 받았다. 한 사람은 사건의 여러 관점에 대해 확인해주었고 다른 한 명은 그것을 부인했다. 사건 발생 후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기억은 변질되었고 사건에 대한 각기 다른 증언은 견해를 달리했다. 증언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해석이 옳다고 믿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 사건에 관해 수 많은 전설이 형성되기도 했다. 때문에 사실에 위배될 수 있는 모든 전설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수집한 증언에 대해 의심이 될 때면 언제나 경찰보고서의 내용을 따랐다.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세부사항과 증거들을 수집하면서 밝혀진 사실은 기억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재구성된다는 것이었다. 한 예로 마이크 마고가 ‘조디악의 총이 시끄럽고 소음기가 장착되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을 확신하는 경찰관의 기억을 토대로 작성된 경찰 보고서가 있다. 이제 은퇴한 경찰관에게 당시 보고서를 보여주면서 당시 마고가 증언했던 것을 말하자, 경찰관은 ‘총에 소음기를 장착한 것처럼 약한 소리가 났다’라고 다르게 증언했다. 그러나 마고는 두 번째, 세 번째 총알을 맞을 때까지 총을 맞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고 첫 번째 총을 맞아 목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왔을 때도 범인이 자신을 순식간에 낚아채 목덜미를 잡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의 경과는 정신적 충격이 큰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살인마를 전설로 만든 언론,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엄청난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써서 유명해진 살인자에 대해 쓰는 기자에 대해서 쓰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
격정적인 한 시대를 재현하는 것 이상의 것을 잡아내기 위해서 지나치게 어려워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영화는 언어의 힘에 관해 그리고 있다. 우리가 조디악을 기억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편지들을 경찰이 아닌 기자들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들은 살인범의 편지를 신문에 실어 대중들은 그 편지들을 읽었고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살인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힘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조디악을 신비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언론이라는 것이다. 모든 피해자에게 몰래 다가가 다섯 명을 총으로 쏘고 다른 두 명을 칼로 난자한 범인은 편지를 써 ‘조디악이 가라사대’라고 말했고 신문들은 그를 ‘암호살인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중의 선두에 서 있던 언론들은 가장 흉악한 악마를 매우 비정상적이지만 슬프고 감상적인 인물로 그렸고 대중은 왜곡된 이미지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영화는 조디악 사건을 샅샅이 파헤쳐나가는데 몰두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레이스미스에 중점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형사들과 기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중에는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들 40여 년이 넘도록 그 사건이 자신들에게 이토록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생존자들은 영화가 실제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에 매우 불안했고 영화를 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 때 당한 피해자들을 떠올렸고 그들은 범인을 꼭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작에 관련된 사람이든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든 그들 모두가 작업에 참여한 목적은 하나다. 영화가 개봉되고 누군가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되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촬영 뒷 이야기
영화가 사실에 충실했던 것과 같이 영화배경과 촬영 역시 해당 시대를 최대한 재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촬영은 2005년 9월 12일이 시작되어 다음 해 2월까지 5개월간 진행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5주 간 진행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은 LA에서 촬영되었다. LA의 옛 우체국에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 건물이 지어졌는데 내부의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연해냈다. 당시의 7~80년대 의상은 사진 고증을 통해 제작되었고 피해자의 셔츠 조각 같은 것은 실제 경찰 자료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 36분으로 여느 영화보다 긴 편이지만 감독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인물을 축소하거나 이야기를 줄일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영화 속에 담았다.
현재 로버트 그레이스미는 영화 제작자들이 ‘조디악’에 관련된 영화를 촬영하면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는 내용의 책을 쓰고 있으며 『슈팅 조디악』이라는 제목을 붙일 예정이다.
출처 : 씨네 21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note&id=10346
“나는 조디악 킬러다…
나는 살인하는 것이 즐겁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숲의 야생짐승을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 조디악 킬러가 보낸 암호문 중 발췌-
본 사건은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발한 1966년 이후 41년이 지난 현재까지 끝내 검거되지 않은 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영구 미결 사건이다.
1969년 8월 1일 신문사에 처음 자신의 살인행각을 담은 편지를 보낸 이후 1978년 4월 25일 마지막 편지까지 암호만 던진 채 잡히지 않고 미국 전역을 공포로 밀어 넣은 살인마 ‘조디악 킬러’.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13명을 습격했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확실하게 밝혀진 피해자 7명 중 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사결과 24명의 피해자가 더 있었고 실제 살해된 피해자가 몇 명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명의 생존자는 여전히 실존하고 있다.
*사건 개요
>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 3대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발레호 타임즈 헤럴드 앞으로 자신의 살인행각을 밝히는 편지와 함께 각기 다른 3종의 암호문 도착
증거물 1 – 1969년 8월 1일. 첫 번째 편지
> 1969년 10월 13일, 편지와 살해한 택시운전사의 셔츠 조각 동봉
증거물 2 – 1969년 10월 13일. 편지와 피해자의 셔츠 조각
증거물 3 – 1969년 11월 8일. 해독되지 않은 340의 암호 문양
> 1979년 8월 9일. 그레이스미스가 해독해냄
> 1969년 11월 9일, 자신을 밝히지 않고 위장범행을 하겠다는 내용의 일곱 번째 편지 도착
“… I shall no longer announce to anyone when I commit my murders, they shall look like routine robberies, killings of anger and a few fake accidents, etc…”
Letter 7 - November 9, 1969
> 1970년 8월 20일, 자신의 실제 이름이라며 암호로 기록한 편지 도착
증거물4 – 1970년 8월 20일. 실명을 암호로 적은 편지
*사건 일지
: 조디악 킬러의 편지에 의거한 사건 희생자들
첫 번째 사건:
1. 사건발생일: 1968년 12월 20일
2. 장소 : 솔라노 카운티의 허만 호수
3. 희생자 : 데이빗 파라데이(당시 17세, 남) 머리에 관통상 입고 즉사
베티 루 젠슨(당시 16세, 여) 다섯 발의 총을 맞고 즉사
4. 특징 : 데이빗 파라데이가 마약과 관련된 일에 연루되어 마약범죄로 간주되었다가 조디악 킬러가 첫 번째 편지에 자신이 범인이라며 이 사건에 관해 경찰만이 알 수 있는 세세한 내용을 적어 조디악의 희생자로 분류됨.
두 번째 사건:
1. 사건발생일 : 1969년 7월 4일
2. 장소 : 발레이오의 블루 락 스프링스 골프코스
3. 희생자 : 달린 퍼린(당시 22세, 여) 다섯 발의 총을 맞고 즉사
마이크 마고(당시 19세, 남) 네발의 총을 맞고 살아남. 첫 번째 생존자
4. 특징 : 생존자 마이크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차 옆에 차 한 대가 주차한 후 한 남자가 후레쉬를 들고 접근, 다섯 발의 총을 난사하고 갔다가 자신의 비명소리를 듣고 돌아와 각각 두발씩 총을 더 쐈다고 한다. 180cm 정도의 키에 탄탄한 몸을 가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백인남성을 목격했으나 당시 경찰들의 미흡한 조사로 용의자 사진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2년 후 재 조사과정에서 범인을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선변호사가 개인적인 시간부족을 이유로 거짓으로 치부함.
사건발생 45분 정도 후 경찰은 한 남자로부터 이 자신이 이 사건의 범인이며 첫 번째 사건도 자신의 범행임을 밝히는 전화를 받았다.
세 번째 사건:
1. 사건발생일 : 1969년 9월 27일 오후 6시 30분
2. 장소 : 나파 카운티 베르예사 호수
3. 희생자 : 세실리아 앤 쉐퍼드(당시 22세, 여) 몸의 앞쪽 5군데, 뒤쪽 5군데,
총 10군데를 칼로 찔리고 병원 후송 후 48시간 만에 사망
브라이언 하트넬(당시 20세, 남) 등 6번을 찔렸으나 생존. 두 번째 생존자
4. 특징 : 생존자인 브라이언의 증언에 따르면, 키 180cm 정도의 복면을 쓴 남자가 총과 칼로 무장한 채 다가와 자신은 몬태나 감옥에서 탈주한 탈옥범으로 멕시코로 가기 위해 돈과 차가 필요하다고 했고 이에 자동차 열쇠와 지갑을 건네주었으나 가져 가지 않고 두 사람을 플라스틱 끈으로 묶고 칼로 찌른 다음 유유히 사라졌다고 함.
현장조사에 따르면 범인은 피해자의 차 문에 범행일자와 시간, 범행도구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조디악 기호를 남겼고 이 때도 역시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범행을 밝혔다.
증거물5 – 조디악 킬러의 복면 삽화
<세실리아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데이빗 콜린스 순경의 증언>
: 칼에 찔린 브라이언과 세실리아는 여전히 묶인 채 담요 위에 누워 있었다. 마침 근처 호수에 있던 어부 한 명이 있었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 비명을 들은 어부는 누군가 자신에게 덮치려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10여분을 숨어 있다가 누군가 습격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자들은 칼에 맞았으니 자신들 쪽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어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다며 떠났다. 계속 포박된 채로 누워 있었던 그들은 어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를 도망치려 했다. 피를 많이 흘려 힘이 없는 상태에서 세실리아가 브라이언의 매듭을 풀어 주었고 브라이언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기어가려 애썼지만 발견됐을 때 현장에서 불과 9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어부와 그의 아들, 근처 산장의 주인이 경찰과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구불구불한 산길 때문에 경찰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30분이나 걸렸고 구급차는 20분 뒤 도착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구조되기까지 피해자들은 1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했다.
두건을 쓰기 전 조디악의 얼굴을 본 세실리아는 콜린스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죽기 직전까지 만들고 나서야 난도질을 멈추고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쇼크 상태에 빠질 찰나까지 심하게 난자 당한 세실리아는 후송 중 연신 ‘얼어 죽겠어요. 온 몸이 다 아파요. 진통제 좀 주세요.’라며 울부짖었다고 했다.
브라이언은 목숨을 건졌지만 세실리아는 병원 이송 후 48시간 뒤 사망했다.
네 번째 사건:
1. 사건발생일 : 1969년 10월 11일 밤 10시 10분
2. 장소 : 프레시디오 하이츠 부근
3. 희생자 : 택시 운전사 폴 리 스타인. 후두에 총 맞아 사망
*희생자들
조디악 킬러에게 피격에도 살아남은 생존자는 마이크 마고와 브라이언 하트넬 두 명이다.
마이크 마고는 1969년 총에 맞은 이후 거의 회복되지 못했다. 영화제작을 위해 마이크 마고를 찾았을 때 그는 부랑 죄로 복역 중이었고 면회를 가서 그를 인터뷰 할 수 있었다. 현재 그는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으며 브라이언 하트넬 역시 사법권의 테두리에서 떠돌아다니면서 불행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증거물6 –현상수배 전단
*암호해독
1969년 8월 1일 처음 신문사로 우송된 살인범의 편지에 동봉된 암호문은 파란색 펜으로 그리스어, 모스 부호, 날씨 기호, 알파벳, 해군 수신호, 점성술 기호 등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암호문을 동봉한 편지들은 살인의 단서를 가득 담은 채 계속 보내졌다. 피해자의 피가 뭍은 셔츠 조각이 배달된 적도 있었고 대규모의 어린 학생들 학살을 예고하는 협박도 있었다. CIA와 FBI, NIA, 해군정보부, 국가안전보장국의 전문 암호해독가들이 암호해독을 시도했지만 암호는 풀리지 않았다. 노스 살리나스 고등학교 교사인 도널드 하덴이 어린 시절 보이스카우트에서 퍼즐을 풀었던 추억을 되살려 암호해독을 하기 전까지는 범인의 의도와 신원 및 관련된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현재 78세가 된 하덴은 전 부인이 암호를 해독하려는 것을 보다가 답답한 마음에 3일 동안 매달려 함께 해독한 암호를 신문사에 보냈다. 하덴 부부의 해독본이 신문에 나가자 하룻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FBI의 전화까지 받았다. 그러나 언론보도 이후 부인과 그는 범인이 자신들을 찾을 것이라는 걱정으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하덴 부부의 암호해독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일정 단어들의 빈번한 출연을 확인한 후 범인이 영어의 구성 패턴을 분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T, A, O, N, I, R, S 뒤에 E가 따르고 다음으로 주로 L, E, S가 나온다
2.가장 흔하게 같은 철자로 한 쌍을 이루는 알파벳은 LL, 가장 흔히 서로 다른 철자로 쌍을 이루는 것은 TH, HE, AB이다.
3.“T, A, O, S 또는 W로 시작하는 단어의 절반 이상이 THE, ING, CON, ENT의 세 문자로 된 조합과 결합한다.
또한 범인은 문자가 아닌 상징이나 형상을 대체 암호로 쓰고 있었다. 범인이 여러 가지 암호를 혼합해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일대일 대응 식의 문자 배합이 아닌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만 했다. 범인이 반복하고 있는 상징을 추론하고 일정하지 않은 숫자를 제거했다. 그러자 해독의 길이 열렸다. 하덴 부부는 살인범의 암호에서 패턴에 따라 ‘kill’이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냈다. 이런 식으로 풀어낸 암호는 다음과 같다.
“나는 살인이 즐겁다 사람 죽이는 일이 숲의 야생짐승을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다 사람을 죽일 때의 그 짜릿함은 섹스할 때보다 더 황홀하고 내게는 제일 스릴 넘치는 일이다 나는 낙원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 곳에서 내가 죽인 자들을 노예로 부리고 살 것이다 당신들에게 내 이름은 알려주지 않겠다 내 이름을 알려주면 내가 노예를 수집하는 일을 막으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이비오리에테메쓰히티(EBEORIETEMETHHPITI)”
하덴 부부는 마지막 부분의 철자를 바꾸면 로버트 에밋 더 히피(ROBERT EMMET THE HIPPIE)가 된다고 했으나 범인이 암호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다고 단언했기 때문에 이는 이름이 아닐 것이라 추측했다.
하덴 부부가 암호를 해독한 23년 후인 1992년 8월에서야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대학 시절에 히피가 되었다가 독일로 이주한 로버트 에밋 로다이퍼의 고등학교 시절, 그를 질투한 수영팀 라이벌 아더 리 앨런을 지명했다.
그레이스미스 역시 로버트 에밋 더 히피라는 문장이 살인범의 신원을 알려주는 단서라고 믿는다. 1969년 하덴 부부가 조디악의 312개 암호를 푼 이후, 그 해석을 이용하여 1932년 작 무성영화 <가장 위험한 게임>에 등장한 사람을 사냥하는 ‘자로프 백작’과 조디악의 암호를 연관 지은 사람이 그레이스미스였다.
‘가장 위험한 게임’은 바로 ‘인간을 사냥’하는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로버트 에밋 더 히피’로 추론된 해석을 포함, 하든 부부의 암호해석에 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여러 논의를 제기했지만 현재까지 이들의 해석을 반발한 명확한 논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로버트 에밋 더 히피’라는 해석에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주장1:
1969년 두 번째 사건 당시 발레이오 경찰청 경사였고 지금은 은퇴한 바와트의 인터뷰>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을 때까지만 해도 경찰은 연쇄살인이 아닌 단순 살인사건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베르예사 호수에서 사건이 터지자 상황은 바뀌었다. 신문사로 편지가 배달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연쇄살인일지 모른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찰은 생존자인 마고의 증언에 따라 1971년 아더 리 앨런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여 조사를 시작했고 아더 리 앨런의 트레일러에서 폭탄을 비롯해 조디악 편지에서 언급했던 물건의 상당 수를 발견했으나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범인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1992년 한 여성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 ‘로버트 에밋 더 히피’라는 이름을 보고 자신이 아는 사람임을 밝히면서 정체가 밝혀졌는데 수영팀을 간신히 꾸려나가다가 히피가 된 ‘로버트 에밋 로다이퍼’가 그의 본명이었다. 아더 리 앨런은 그 팀의 다이버였고 로버트 에밋은 아더 리 앨런이 자신을 몹시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건발생 22년 후인 1991년 공항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생존자인 마고와의 인터뷰에서 마고는 용의자들의 사진 중 아더 리 앨런을 지목했다. 어떻게 자신이 지목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확신하는지 묻자 그는 ‘이 얼굴을 처음 본 게 69년 7월 4일이다. 날 쏜 사람이 틀림 없다.’라고 대답했다. 마고의 증언에 따라 당국은 기소를 위한 회의를 소집했지만 아더 리 앨런은 회의 전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편지에서 발견된 DNA샘플 조사결과, 아더 리 앨런의 DNA와 불일치한다는 결론이 났지만, 바와트는 여전히 아더 리 앨런이 조디악이라고 믿고 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은 공식적으로 조디악 사건을 종결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수사를 진행 중이다.
<‘로버트 에밋 더 히피’라는 해석에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주장2:
법정 언어전문가 제럴드 맥메나민의 소견>
1969년 10월 11일 샌프란시스코의 택시운전사 폴 스타인을 잔인하게 총살한 사건현장에서 손 글씨와 피 묻은 지문이 발견되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것이 조디악의 신원을 밝힐 중요한 단서라고 믿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뒤 다른 전문가가 조디악의 편지에 쓰인 손 글씨를 보고 이는 신원을 위장하기 위한 술수였음을 밝혀냈다.
제작진은 조디악의 편지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법정 언어전문가이자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인 제럴드 맥메나민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럴드 교수는 암호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언어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의 무의식이 작용하는 곳은 자연언어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패턴이 있고 단어를 어떻게 나누는지, 음절과 문법에 있어 의미가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형태소를 어떻게 나누는지 봐야만이 의미론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편지의 형식이나 글씨, 종이, 잉크 등에 초점을 맞추었던 문서 조사자들과 달리 제럴드 교수는 조디악이 쓰고 있는 언어와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을 단어구조와 철자에 초점을 두고 조사했고 이에 글 쓰는 사람이 단어를 분절하는 것을 통해 위장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조디악의 편지를 아더 리 앨런의 글씨와 비교하기 위해 1972년 9월 20일 그가 오른손으로 써서 넘긴 글씨 샘플을 받았다. 자신의 글씨를 위장하기 위해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는 왼손잡이이지만 오른손으로도 몇 가지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알려진 앨런이 남긴 오른손으로 쓴 유일한 자료였다. 비교결과, 조디악의 편지에서 발견한 음절과 형태소에서 단어를 나누는 방식이 앨런이 오른손으로 쓴 글씨에서도 발견되었다.
조디악의 글씨와 비교할 수 있는 5개의 문장과 3개의 분절 부분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는 충분한 자료가 아니다. 맥메나민 교수의 개인적인 결론은 5개의 문장을 봐서 동일 인물이 확실하다고 믿는다.
유력 용의자에 대한 증거가 확실해지고 있다.
사건의 종지부를 찍을 날은 다가오는가?
About the MOVIE
스크린으로 옮겨진 악몽
“범인은 못된 아기를 데려간다는 전설 속의 요괴와 같은 존재였다. 당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건의 소식을 접하고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사건 현장에 있던 스쿨버스에 내가 타고 있었다면?’, ‘살인마가 우리 집에 나타난다면?’ 실제 내가 살던 곳은 사건현장과는 좀 떨어진 마린이라는 지역이었지만 조디악 킬러가 우리 동네에도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두려웠다.”
-데이빗 핀처
70년대 초 당시 7살이었던 데이빗 핀처 감독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조디악’이라고만 알려진 보이지 않는 괴물에게 사로잡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이 30년 뒤 이 살인마에 대한 영화를 찍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온통 ‘조디악’에게 사로잡힌 그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스릴러 영화의 교과서로 일컬어지는 <세븐>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디악 킬러’를 본격적으로 다룬 <조디악>을 찍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가장 악명 높았던 살인자를 쫓던 몇몇 경찰관들과 함께 살인범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 10,000장이 넘는 서류와 증거들을 샅샅이 훑었으며 생존자들과 피해자들의 유족들, 유력 용의자의 친지들과 인터뷰도 했다. 그 당시 유력했던 용의자는 소아 성애자로 돌변한 전직 수영교사로 아끼던 어린 학생들 때문에 방화와 감금을 일삼은 자였다.
그런 과정에서 핀처 역시 영화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살인자의 미스터리를 풀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삽화가에게 불씨를 당긴 바로 그 욕구였다.
본래 핀처 감독에게는 인간의 행동과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을 놀랄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 사건 속의 감정을 명확하게 풀어내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세븐><파이트 클럽><패닉 룸> 등 전작들이 모두 그러했다. 감독이 전하는 감정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게 몰입하게 된다.
핀처 감독은 <조디악>을 일반 스릴러물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어떤 사실에 너무 집착해서 몇 날 몇 일이 지나도 그것을 떨쳐버릴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디악>의 기본 바탕은 이런 비정상적 반사회 행동단계와 관련이 깊다. 사람들이 연쇄 살인자나 생존자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전혀 상관 없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기를 원한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억제하기 어려운 욕망이며 결국에는 파괴본능과 관련이 있다. 핀처 감독은 우리의 이런 욕망을 영화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조디악의 초상-원작자 그레이스미스
”사설 만화가로서 일하는 동안 세상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으며 화가이자 삽화가였기 때문에 매일 암호를 다루는 일을 했다. …그 때 당시, 잭 더 리퍼 이후로 언론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신원에 관한 실마리를 던져 경찰을 조롱하던 살인범은 없었다. 범인이 보낸 편지의 기이함이 나를 유혹했다.”
-『조디악』의 저자, 로버트 그레이스미스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핀처가 느낀 것과 동일한 강박관념을 베스트셀러가 된 『조디악』과 후기작『조디악 언매스크트』 두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사건에 관한 모든 세세한 사항을 분단위로 재연하면서 4곳의 경찰 관할권에서 실제 조사를 벌인 사람들에 관해 자세한 내용들을 글로 써냈다. 지난 날 자신과 동료 폴 에이브리의 모습을 조롱하는 고통스러운 어조로.
그레이스미스는 개인시간을 투자해 조디악 사건에 대해 조사했다. 모두들 사건에서 손을 뗐을 때도 그는 사건을 뒤쫓았다. 그는 대중들도 살인자를 쫓는데 몰입할 수 있도록 두 권의 서적을 일인칭 일기형식으로 썼다.
그가 집필을 시작했을 무렵 수사망은 2,500명의 용의자들로 좁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조디악은 대단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은 최고가 될 수 있었고 때문에 경찰은 혼자만이 공을 독식하기 위해 모든 정보를 덮어버리는데 급급했다. 경찰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고 다만 조사한 내용이 진실에 가까울 때만 그것이 맞는지 틀린 지 확인해줄 뿐이었다. 자료를 관람할 때도 필기도구나 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련번호와 날짜 등을 외워야만 했다.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써 내려가기까지 꽤 오랫동안 인고의 시절을 보내고 10년 후, 13번의 수정을 거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자료를 351쪽의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정리했다.
사건에 관해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경찰이 놓쳤던 목격자와 용의자들을 추적했고 여러 개의 경찰서를 방문하여 조디악이 검거될 수 있도록 모든 사실을 통합하여 경찰들과 공유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의 평생 소원은 조디악의 검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폭풍 같았던 추적과 집필의 여정을 떠올려볼 때 자신을 포함한 사건과 연루된 극중 인물들이 실제로 조디악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은 것은 경이로운 일이라고 한다. 오랜 추적, 감당할 수 없는 광기, 미스터리, 비극과 죽음, 그리고 엉망이 된 결혼 생활, 엇나간 직업 경력, 파괴된 건강까지. <조디악>은 경찰들이 계속해서 뒤통수를 맞고 있을 당시의 좌절에 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실제인물, 영화 속 인물, 그리고 배우들
<조디악>은 연쇄 살인범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살인범을 쫓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강하게 사로잡혀 자신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는 잊은 채 길을 헤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살인범을 쫓아 가는 작업은 그들에게 강박관념이 되었고 그 강박관념은 각자를 지배하고 있는 과거의 환영에 빠져들게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살인범의 올가미로 그들의 삶은 형성되고 파괴되었다. 그레이스미스는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고 에이브리는 마약중독으로 망가졌다. 토스키는 타락했고 암스트롱은 좌절했다.
조디악이 보낸 암호를 해독한 뒤 몇 년 후 사건이 미결상태로 남게 되자 책 집필을 가장하여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그레이스미스.
제이크 질렌할은 데이빗 핀처에게 받은 각본을 펼치자마자 각본의 사실성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살인사건의 묘사가 무서웠지만 이것이 모두 사실이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은 그를 즉각 촬영에 참여하게 했다. 실제인물을 사실적으로 연기하기 위해 질렌할은 계획적이고 과학적인 과정을 겪었다. 그레이스미스를 만나 그의 독특한 버릇을 연구하고 행동과 성격을 파악했다. 그레이스미스의 열정과 민감함을 포착했고, 출신배경과 공손한 태도, 기질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그러나 그는 있는 그대로 연기한 것이 아니라 해석을 가미해 연기했다.
유일하게 현재 생존해 있지 않은 인물 폴 에이브리는 유머감각 있고 뼈 있는 농담을 즐겨 하던 유능한 기자였다. 그러나 코카인에 손을 댔고 중독되어 몸이 심하게 망가졌다. 그리고 사망하기 전에 손주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조디악 킬러’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했다.
동료 배우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야기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특별한 에너지를 지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동료배우들은 하나같이 그를 천재라고 불렀고 늘 존경해 왔던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흥분되기도 하고 전율을 일으킬만한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토스키는 사건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1977년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를 만났고 책 집필을 도와주며 현재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마크 러팔로는 자신이 맡은 토스키라는 인물과 감독이 각본에 그린 그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잔인하기 때문에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연기하게 될 토스키라는 캐릭터는 배우들이 누구나 탐낼만한, 형사를 연기하려고 할 때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데이빗 핀처는 거의 모든 배역이 실제인물과 매우 흡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캐스팅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Production Note
방대한 조사
<조디악>의 각본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방대한 조사를 통해 쓰인 것이며 극적인 영화가 그릴 수 있는 한도에서 실제사건을 가장 명확하고 정확하게 그려낸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사건과 관련된 모든 생존인물들을 인터뷰 했고, 관련된 그 어떤 자료든 모두 수집했다.
사건은 오랜 세월 동안 미결 상태로 남아 있었고 이를 다시 정리하는 것은 제작진의 몫이었다. 이는 대규모의 작업이었다. 먼저 사실과 허구 사이의 분명한 선을 긋고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사소한 사실일지라도 자료의 아귀가 맞지 않을 경우 수집한 자료의 6분의 5를 버리기도 했다.
영화에 첨가한 사실들은 두 권의 책과 방대한 인터뷰, 경찰의 조서를 근거했다. 준비 과정은 길고 힘겨웠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따라서 제 2의 혹은 제 3의 경로를 통한 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레이스미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정확한 고증을 위해 당시 사건에 대한 다른 시선과 다른 견해를 비교하며 제자리를 잡았다. 각본작업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도 같은 사건에 대해 두 사람의 확인을 받았다. 한 사람은 사건의 여러 관점에 대해 확인해주었고 다른 한 명은 그것을 부인했다. 사건 발생 후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기억은 변질되었고 사건에 대한 각기 다른 증언은 견해를 달리했다. 증언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해석이 옳다고 믿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 사건에 관해 수 많은 전설이 형성되기도 했다. 때문에 사실에 위배될 수 있는 모든 전설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수집한 증언에 대해 의심이 될 때면 언제나 경찰보고서의 내용을 따랐다.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세부사항과 증거들을 수집하면서 밝혀진 사실은 기억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재구성된다는 것이었다. 한 예로 마이크 마고가 ‘조디악의 총이 시끄럽고 소음기가 장착되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을 확신하는 경찰관의 기억을 토대로 작성된 경찰 보고서가 있다. 이제 은퇴한 경찰관에게 당시 보고서를 보여주면서 당시 마고가 증언했던 것을 말하자, 경찰관은 ‘총에 소음기를 장착한 것처럼 약한 소리가 났다’라고 다르게 증언했다. 그러나 마고는 두 번째, 세 번째 총알을 맞을 때까지 총을 맞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고 첫 번째 총을 맞아 목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왔을 때도 범인이 자신을 순식간에 낚아채 목덜미를 잡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의 경과는 정신적 충격이 큰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살인마를 전설로 만든 언론,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엄청난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써서 유명해진 살인자에 대해 쓰는 기자에 대해서 쓰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
격정적인 한 시대를 재현하는 것 이상의 것을 잡아내기 위해서 지나치게 어려워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영화는 언어의 힘에 관해 그리고 있다. 우리가 조디악을 기억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편지들을 경찰이 아닌 기자들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신문기자들은 살인범의 편지를 신문에 실어 대중들은 그 편지들을 읽었고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살인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힘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조디악을 신비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언론이라는 것이다. 모든 피해자에게 몰래 다가가 다섯 명을 총으로 쏘고 다른 두 명을 칼로 난자한 범인은 편지를 써 ‘조디악이 가라사대’라고 말했고 신문들은 그를 ‘암호살인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중의 선두에 서 있던 언론들은 가장 흉악한 악마를 매우 비정상적이지만 슬프고 감상적인 인물로 그렸고 대중은 왜곡된 이미지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영화는 조디악 사건을 샅샅이 파헤쳐나가는데 몰두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레이스미스에 중점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형사들과 기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중에는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들 40여 년이 넘도록 그 사건이 자신들에게 이토록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생존자들은 영화가 실제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에 매우 불안했고 영화를 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 때 당한 피해자들을 떠올렸고 그들은 범인을 꼭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제작에 관련된 사람이든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든 그들 모두가 작업에 참여한 목적은 하나다. 영화가 개봉되고 누군가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되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촬영 뒷 이야기
영화가 사실에 충실했던 것과 같이 영화배경과 촬영 역시 해당 시대를 최대한 재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촬영은 2005년 9월 12일이 시작되어 다음 해 2월까지 5개월간 진행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5주 간 진행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은 LA에서 촬영되었다. LA의 옛 우체국에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사 건물이 지어졌는데 내부의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연해냈다. 당시의 7~80년대 의상은 사진 고증을 통해 제작되었고 피해자의 셔츠 조각 같은 것은 실제 경찰 자료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 36분으로 여느 영화보다 긴 편이지만 감독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인물을 축소하거나 이야기를 줄일 생각이 없었다. 때문에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영화 속에 담았다.
현재 로버트 그레이스미는 영화 제작자들이 ‘조디악’에 관련된 영화를 촬영하면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는 내용의 책을 쓰고 있으며 『슈팅 조디악』이라는 제목을 붙일 예정이다.
출처 : 씨네 21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s=note&id=10346
2007/08/18 22:04
2007/08/1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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